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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표시 운서 편찬 위해 13 차례 요동 다녀온 신숙주'

579 돌 한글날, 고산동 신숙조 묘에서 고령 신씨 추향제, 한글창제 위덕 기려 " 운서에 대한 연구, 훈민정음 연구 바탕"

경기북부이슈 | 기사입력 2024/10/10 [07:12]

'훈민정음 표시 운서 편찬 위해 13 차례 요동 다녀온 신숙주'

579 돌 한글날, 고산동 신숙조 묘에서 고령 신씨 추향제, 한글창제 위덕 기려 " 운서에 대한 연구, 훈민정음 연구 바탕"
경기북부이슈 | 입력 : 2024/10/10 [07:12]

▲ 신숙주 선생 한글창제 사적비

 

의정부 고산동 신숙주 묘 앞에는 한글학회가 세운 문충공 고령 신숙주 선생 한글 창제 사적비가 있다.

 

세종을 도와 한글 창제에 이바지한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한글학회가 1971년 세운 사적비다.

 

579 돌 한글날인 9일 이곳을 찾았다. 고령신씨 문충공(신숙주)파 후손들은 매년 한글날인 이날에 신숙주의 위덕을 기리는 추향제(시제)를 지낸다.

 

시제가 끝난 뒤 정리를 할 때여서 여유 있게 한글 창제 사적비며 신숙주 묘 등을 둘러볼 수 있었다.

 

허웅 등 당시 한글학회 회장 등이 중심이 돼 세운 사적비에는 신숙주의 한글 창제에 이바지한 공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한글이 배우기 쉽고 쓰기 쉬워서 우리말을 적은 글로서는 완전하려니와 제자원리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점에서 세계에 으뜸가는 문자로 창제된 데에는 선생의 공이 가장 컸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글로 표시하는 운서를 편찬하는데 참고 사항을 묻기 위하여 요동에 유배되어 있는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에게 사신을 보내실 제 대왕(세종)께서는 선생이 능히 진수를 캐 올 인재 됨을 아시고 차견하심을 보아도

 

음운의 이치를 탐구하기 위하여 수천 리 먼 길 요동을 왕복하시기 무릇 열세 차례에 이르렀으니, 한글이 완벽한 글자로 태어난 배후에는 선생의 눈물겨운 노고가 깃들여 있음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랴?”라고 한글창제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그가 훈민정음 반포 직전인 1445년에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중국 음을 훈민정음으로 표기하는 방법에 대해 도움을 받으러 요동을 다녀왔다는 사실은 세종, 성종실록 등에 기록돼 있다.

 

이러한 그의 중국 한자와 한자음 사전인 운서에 대한 연구는 훈민정음 연구의 바탕이 됐고 오늘날 국어학 연구의 길까지 터놨다. 한국 최초 표준음에 관한 책이자 운서(韻書)로 한자음을 훈민정음으로 표기한 동국정운을 발간했다. 한글을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우리말을 적은 글이 되게 한 것이다.

 

 

579년 전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 반포와 보급에 많은 업적을 남긴 학자요 관리였던 문충공 신숙주는 그의 부인과 함께 의정부시 고산동 부용산 자락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한가로이 공부에만 열중하겠다는 그의 호 보한재(保閑齋)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마을 길 이름은 그의 호를 따라 보한재 이고 시호인 문충을 따라 국도 43번 도로 송산로서 고산지구를 지나는 중심도로는 문충路다. 또 신숙주 선생의 훈민정음 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기려 고산지구에 있는 초등학교 이름은 훈민초등학교, 중학교는 훈민중학교다. 신숙주 선생은 한글과 함께 늘 우리 곁에 있다.

김동일기자 535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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