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흥차사에서 의정부 지명이 유래됐다는 史實 찾기 어려워"향토 사학자 유명호씨, 의정부학 강의서 주장, "태조 개경으로 환궁,부자상봉지는 인근" , "전좌마을 표지석도 마찬가지"
따라서 태조와 태종의 상봉지 전좌 마을(의정부시 호원동)에 의정부 대신들이 와 정사를 논의했다해서 의정부라 불리게 됐다는 전좌 마을 표석의 의정부지명 유래도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경기 북부 향토 사학을 연구하고 있는 유호명 씨는 지난 19일 경기북부상공회의소서 있은 의정부 학 ‘함흥차사의 실제와 전설’이란 주제의 강의에서 함흥차사와 의정부시 지명을 연관짓는 것에 대해 역사적사실은 들어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겪은 태조가 왕위를 넘기고 고향인 동북 면(지금의 함흥)에 간 역사적 기록을 보면 당시 태종이 태조를 문안하려 보낸 차사는 함흥차사가 아니고 함주나 양주 차사로 불러야 맞는다고 지적했다.
1402년 당시 지명은 함주이지 함흥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함흥이라는 지명은 1416년에야 등장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함흥차사란 말은 385년 뒤인 1787년 정조 때 송시열이 처음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또 당시 태조가 환궁한 곳은 천도한 개경(개성)으로 한양이 아님을 들면서 태종이 태조를 영접한 곳은 개경 인근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동북면에 갔던 태조의 환궁을 태종이 지금의 의정부시 호원동인 전 좌 마을까지 나와 맞았고 의정부 정승들이 전좌 마을까지 와서 정사를 논의했다는 것에 대한 고증을 찾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의정부 정승들이 전좌마을, 지금의 호원동까지 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함흥차사를 전제로 한 의정부의 지명유래를 역사적 사실에서 밝혀내기 어렵고 이같은 내용의 호원동 전좌마을 유래 표석도 마찬가지란 의견을 내놨다.
그는 2014년 발간된 의정부 시사에도 비슷한 내용이 언급돼 있다고 덧붙였다. 의정부 시사는 함흥차사 전설을 기록한 연려실기술을 바탕으로 시의 이름이 의정부가 됐다고 하지만 이런 사실만으로 지명유래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의정부란 지명은 조선시대 최고의 관청 의정부의 둔토가 있어 생겼다고 보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고 의정부 시사는 기술하고 있다.
유명호 씨는 “ 한양으로 재천도 뒤 녹양(양주)에서 태조와 태종의 상봉은 자주 목도된다. 녹양은 태종이 지극한 효심으로 부자 갈등을 해소했고 이후 국운을 융성케 한 지역이 됐다.”라며 “이를 의정부지명과 연계시켜 스토리텔링화하는 것도 고려할 만 하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호원동에 있는 전좌마을 표석에는 “ 조선 초기에 2차의 난을 겪은 이성계는 정치의 뜻을 버리고 오랫동안 고향 함흥으로 은퇴, 무학대사의 끈질긴 설득으로 마침내 한양 환궁 길에 올랐다. 이때 태종은 부왕이 환궁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까지 친히 나와서 맞이했는데 그 상봉지가 전좌마을이 됐다. 당시 이곳에서 정사를 논했다고 하여 의정부란 지명을 얻었다. 이후 부자 상봉을 계기로 국운융성의 기틀이 마련됐다”고 기록돼있다. <저작권자 ⓒ 경기북부이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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