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이슈

[여행노트]" 이방인의 침략처럼 파괴당한 오월의 사자들"

5.18민주운동의 현장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과 광장, 기록관, 전일빌딩 "인류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

경기북부이슈 | 기사입력 2024/06/23 [20:29]

[여행노트]" 이방인의 침략처럼 파괴당한 오월의 사자들"

5.18민주운동의 현장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과 광장, 기록관, 전일빌딩 "인류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
경기북부이슈 | 입력 : 2024/06/23 [20:29]

▲ 전일빌딩서 바라본 옛 전남도청 앞 광장


지난 18일 광주를 찾았다. 지인 친척들의 애경사가 있을 때 들렀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시간을 냈다.

동학 농민혁명, 3.1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4·19혁명, 유신독재 반대투쟁,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2016년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역사의 고비마다 민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곳이다민족민주운동의 전통이 숨 쉬는 도시, 광주를 꼭 찾아보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5.18민주화운동은 나와 시대를 같이하면서 진상규명과 단죄에 이르기까지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197910.26 사건으로 유신 독재가 막을 내린 후 서울의 봄과 함께 19803월 시위 등 민주화운동이 활발하던 때였다. 그러나 12, 12사태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는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회해산 국보위 설치 등 정권 찬탈 음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전국적으로 신군부 퇴진과 계엄철폐,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확산하던 때였다.

  

▲ 기록관에 전시된 당시 시민들의 신발

 

광주에서는 5월 초부터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시국 성토대회가 연일 열렸고 시민들과 거리 집회 등 시위가 이어졌다. 5.18일 전두환 신군부는 사전시위 진압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광주에 투입해 이를 제압하면서 정권찬탈의 계기로 삼았다.

  

금남로 5·18 민족운동 기록관 1층 상설전시실을 들어서자 5·18 당시 희생된 인물들의 이름 나이 당시 신분 등이 적힌 모습이 TV속 영상으로 다가왔다. 까까머리 학생을 비롯해 대부분 20~30대 젊은이다. 나도 모르게 40여 전 19805·18 광주의 현장에 와있었다.

 

피 묻은 옷에 널브러진 채 포개져 트럭에 실려있는 시신. 여기저기 나뒹구는 신발. 군인들이 곤봉과 개머리판으로 시민을 때리고 질질 끌고 가는 모습.

사진 속 설명을 계속해서 읽어갈 수 없었다.

 

▲ 김남주시인이 쓴 시 '달'

  

광주시민들이 사랑하는 김남주 시인은 이 참상을 이렇게 썼다.

이방인의 침략처럼, 원주민의 학살처럼 파괴당한 오월의 사자들이여. 내가 노래해 주마. 기억해 주마. 가로수와 함께 쓰러진 당신의 육체를. 압제자의 총알 때문에 벌집투성이가 된 당신의 가슴을

당시 유족이 보상금을 받은 사망자만 163명이고 부상자까지 무려 5천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 민주화운동 기록관 모습

 

5·18 민주화 운동기록관은 1980518일부터 27일까지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의 권력 찬탈과 학살 만행에 저항했던 광주시민들의 기록물이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이를 수집, 보존하기 위해 2015년 설립돼 문을 열었다.

 

시민들의 기록은 물론 이후 진상규명, 피해자 보상, 기념 사업에 이르기까지 증언 정부 기관과 군사 법정 자료 기자 취재 수첩 등 문서 4200여 권과 3700여 컷의 사진필름 등의 기록물을 전시 보관하고 있다.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존엄성을 유린하고 권리를 짓밟을 때 얼마나 비극적이며 반인권적인 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우리나라 민주화는 물론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주화운동에도 영향을 준 이 사건의 역사적 가치와 정신을 유네스코는 인류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한 것이다.

 

▲ 전일빌딩 로비에는 '518 민주화운동의 목격자'라고 전일빌딩을 소개하는 안내문이 있다.

 

5·18 민주화 운동기록관에서 불과 도보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전일빌딩 245를 찾았다.

전일빌딩은 245개의 총탄 자국을 간직한 5·18 민주화운동의 목격자입니다. 계엄군의 잔인성을 가장 높은 곳에서 지켜보며 시민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었으며 805월의 함성과 절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1층 로비에 전일 빌딩 소개 영상과 함께 쓰여있는 안내문이다.

 전일빌딩은 1968년 건립되기 전까지 1928년부터 전남, 호남 신보가 자리하고 옛 전남일보와 전일 방송 광주일보 등 2004년까지 광주 전남지역 언론의 중심지 구실을 했던 곳이다.

 

전일빌딩이 자리한 금남로 11번지는 5·18 민주화운동 중심지였던 옛 전남도청과 광장과 접해 있다

527일 도청 진압 당시 시민군이 저항했던 곳으로 헬기 사격으로 245개 총탄 자국을 간직한 역사적 건물이다.

리모델링과 함께 전일빌딩 245라는 이름으로 재탄생, 시민문화시설로 사용된다.

 

▲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있은 80년 5월 초 시민들의 시국성토대회 모습

 

당시 광주시에서는 가장 높은 10층 건물로 바로 앞 전남도청과 광장에서 벌어진 5·18 민주화운동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목도한 현장이다.

8층 카페 245에서 바라보니 시위의 중심지였던 옛 전남도청사는 복원하느라 가림막이 쳐져 볼 수 없었지만, 광장은 불볕더위 속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분수를 중심으로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시민의 모습과 외침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마침 9층 기념 공간 기획전시실에서는 ‘ 518일 일요일 맑음이라는 805월을 직접 기록한 시민들의 오월일기를 전시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오월일기는 5·18과 관련해 정부, 국회 시민, 단체, 미국 정부 등에서 생산한 기록물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개인의 기록이지만 5·18을 직접 목격하고 이에 대한 느낌과 일상을 기록한 것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초등, 여고생의 일기를 비롯해 직장인 공무원 주부 등 다양하다.

 

▲ 당시 김현경 어린이가 쓴 일기

 

김현경은 당시 동산초등학교 6학년이다.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5·18에 대한 느낌과 당시 분위기를 적었다.

 518()  ‘무서움

“6학년 어린이인 나는 정치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아빠 말에 따르면 시내서 대학생 언니 오빠들의 데모가 또 있었다고 한다.”

  519(공포

도청에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교정소도 못가고 벌벌 떨었다. 젊은 언니 오빠들을 잡아서 때린다는 말을 듣고 공수부대들 아저씨들이 잔인한 것 같았다.“

초등학생 어린이가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5.18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읽힌다.

 

▲ 전일빌딩의 탄흔을 시각화한 모습


10’19800518 메모리얼 홀에는 245개의 헬기 탄흔을 보존한 공간이다. 유리스카이워크로 탄흔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 사격은 UH-1H이 통체에 장착한 M6기관총으로 호버링(제자리 비행)상태에서 연발 사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결과다.

5·18 운동 기간 중 521일과 27일에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많은 사람이 증언하고 있다. 구체적인 헬기 기종, 사용 총기 등 헬기 사격 관련 사항은 아직 진상규명 중이다.

10층 안내직원은 당시 주변에는 전일빌딩보다 높은 건물이 없었고 전남도청 시민군을 진압하기 전 전일빌딩에 시민군이 LMG를 설치했다는 소문에 헬기로 위협사격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말했다.

 

▲ 무등산서 바라본 광주시가지


우리는 5·18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얻었는가?

역사는 반복된다는 수사가 우리에게 대입돼서는 안 될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의 교훈을 인권 침해에 저항한 인권정신, 맨손으로 잔혹한 총칼에 맞섰던 비폭력 정신, 공권력의 공백 속에도 질서 의식을 가지고 치안을 지켰던 시민정신, 항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평화정신이다라고, 규정했다.

 

광주를 찾은 날은 전국 곳곳에 올해 들어 처음으로 폭염 관련 기상특보가 내려져 무척이나 무더운 날씨였다. 실내서 전시물을 둘러보는 관광이어서 다행이었다.

모처럼 광주를 찾은지라 이튿날은 리프트를 타고 무등산에 올라 호남의 빛 고을 광주시가지를 아무 생각없이 한참 동안 바라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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